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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타
작성일23-11-08 19:29 조회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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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은 내게 물음을 던졌지만, 사실 그 문장은 그 자체로 답이 되는 것이었다. ‘……그랬다면, 내가 그랬다면 믿을래?’ 넌 믿지 못하겠지만 그 방송에서 난 너에게 고백을 한 셈이라고. 나에게는 준의 물음이 그렇게 들렸다. 하지만 말이 되지 않았다. 그의 유명세에 비추어 봐도 그랬다. 만약 방송에서 준이 그런 말을 했다면 내가 지금까지 모르고 있을 수가 없는 거였다. 아니, 비단 나뿐만이 아니겠지. 준의 가슴에 안겨 있던 몸을 살짝 일으켰다. 준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방금 내가 들은 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싶어서. 하지만 준은 눈가를 일그러트리면서 낮게 말했다. “됐어. 그만하자. 이런 걸로 시간 보내지 말고 우리…….” 그때. 문득 내려놓은 시야에 준이 저도 모르게 바닥 위에 내려놓은 리모컨이 들어왔다. 잠시 갈등했다. 준의 낮은 음성에 공기조차 침잠하고 있었다. 준이 원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준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 어떤 감정이 내게 다가오게 된다고 해도, 이제는 그 어느 것도 허투루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내겐, 알 필요가 없는 너의 순간이라는 건 없으니까. 준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스럽게 리모컨을 집어서 전원 버튼을 눌렀다. 검은색 네모난 화면이 금방 색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MC 임은아와 준의 모습이 반짝 떠올랐다. “이하루.” 그와 동시에 준의 무거운 말이 툭 아래로 떨어졌다. 준은 서둘러 리모컨을 도로 집으려 몸을 기울였다. 하지만 리모컨은 테이블 저 아래로 내가 밀어 던진 후였다. 이미 네 위에는 내가 안겨 있었으니. 난 준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네 허리를 꼭 껴안아 버렸다. “방송에서 고백했다며.” “그래서 안 된다고 했잖아. 그게 이유라고.” “그 고백, 나한테 한 고백이었을 거 아니야.” “……그것도 포함해서. 그게 다 이유라고 내가…….” “다른 사람한테 한 고백이 아니면. 그 순간에도 날 떠올리고 있었다면. 나 볼래.” “…….” “나 보게 해줘, 준아. 내가 네 마음을 모르던 시간 속의 네 진심에도 닿고 싶어. 그러고 싶어 나.” “하아…….” 한숨 다음에 다른 말이 딸려오지 않았다. 준이 고민하는 사이에도 프로그램 속 MC와 준의 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넌 그동안 일본에 있어서 몰랐겠지만, TV만 틀면 네가 나오는 단독 토크쇼 방영한다고 매일매일 선전했었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오늘을 기다린 이유가 내가 아니라 고작 저 토크쇼 보는 거였단 말이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준은 나를 더 깊게 제 품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건지, 자꾸만 나를 감싼 팔의 간격을 좁혔다. “아니, 너도 보고 토크쇼도 보고.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난 항상 널 기다리고 있었고, 토크쇼는 오늘만 기다렸지. 오늘 하루만.” “오늘 하루만.” “응, 오늘 하루, 아, 잠깐만. 지금 지금.” TV 속에서는 중요한 질문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준의 팔을 걷어내듯 밀어내고 냉큼 TV 앞에 앉았다. 차마 붙잡지 못한 준은 다가오려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만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은 듯했다. “TV 속 김준이 나잖아. 고백은 내가 몇 번이고 해줄 테니까, 그러니까 그만 보고 이리 와.” “응.” 대답만 잘했다. 난 아직도 TV 속 임은아와 준만을 꿋꿋이 보고 있었다. 마침 임은아가 준에게 중요한 질문을 건네려 운을 떼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최근에 ‘the train’의 뮤즈라고 해야 할까요. 김준 감독님의 첫사랑과 재회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녹화방송이었으니까, 아마 이때쯤은 준과 내가 다시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미 준에게는 이런 질문이 쏟아지고 있었다. 정말 몰랐는데……. [어떠신가요? 그 열차, 이미 종착역에 들어간 지 오래일 텐데.] 질문은 꽤 비유적이었다. 그래서 이 질문은 기실 극히 직설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고 있었다. 첫사랑과의 재회를 말하다, 자연스럽게 준이 찍은 영화 ‘the train’의 열차에 비유하며 현재의 감정을 묻는다는 건 너무나도 이유가 뻔했다. 비유적 질문은 사실 가장 노골적인 의도에 기반하고 있었다. 마치 내게 던져진 질문인 것처럼 난, 크게 숨을 들이켰다. 화면 속의 준은 바로 입을 떼지 못했다. 나보다도 더 예리하게 질문의 의도를 준은 이미 눈치채고도 남았을 터였다. 고민의 시간이 길어졌다. 화면 속이 정적에 깊게 잠겨 있었다. 그러다 이내, 무언가 결심을 내린 듯한 준의 낯빛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곧 준은 제 진심을 차분하게 전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정적과도 닮은 나지막한 음성이 화면에서 흘러나왔다. [아직도 저는, 그 열차는, 제가 아주 오랫동안 종착역이라고 생각했던 그 역에 머물러 있어요.] 종착역에 머물러 있는 열차……. 그 말은 단숨에 나를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설산 속 열차를 지키고 있던 히로시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건 있습니다.] 차분한 음성은 그대로였지만, 준의 눈빛이 더 선명하고 결연한 의지를 내비치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어쩌면 그 열차가 종착역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이 열차는 봄을 향해 달릴 수 있을까, 그게 현재 제가 안고 있는 고민입니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우리가 재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루어진 인터뷰라고 했었다. 어떤 마음으로 준이 이런 말을 했을까. 그때도 준의 가슴이 이런 고민으로 채워져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저 울고 싶어졌다. 그러다 문득 영화 속 히로시를 다시 떠올렸다. 이날의 준의 모습 위로, 눈에 파묻힌 열차 주변을 연신 삽으로 퍼내던 히로시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쌓여가는 눈 속에서 서서히 제 형체를 잃어가던 오래된 녹슨 열차. 설산은 그 열차의 종착역이 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준은, 어쩌면 이 열차는 그 설산을 벗어나 봄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너무나 오래 이어졌던 우리의 겨울을 벗어나, 봄을, 하루를 되찾으러 가고 싶다는 말. 두 달 늦게 도착한 준의 수줍은 고백이었다. “이하루. 너 울어?” 준이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와 내 얼굴 앞에 제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가만히 내 얼굴을 구석구석 어루만지듯 훑는 준을 나도 같이 바라보았다. 준의 입술 끝이 조용히 한 칸 위로 말려 올라갔다. “울 것 같은 표정인데 안 우네. 너 항상 이럴 땐 울던데.” 목구멍이 메여있어 말을 고르려는데, 준이 말했다. “걱정했는데…….” 목구멍부터 목덜미, 눈가까지 열기가 이미 가득 차오른 느낌이었지만, 난 눈물을 참았다. 슬픔이 가득 쌓여 더 버티지 못하고 쏟아내는 눈물은 지금의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준에게 이 순간이 다르게 스며들기를 바랐다. “울 이유가 없어서. 히로시는 이제, 봄을 만났으니까. 네 고백은 이미 이루어졌으니까.” 준의 눈이 살짝 커졌다.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둥그런 눈웃음을 만들어냈다. “응. 정말. 정말, 다 이루어졌어. 거짓말처럼.” 준의 입술이 내 입술에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그 찰나의 입맞춤에 어떤 애틋함이 실려 온 것처럼 가슴이 벅찼다. 난 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아니면, 있잖아.” “응.” “우리가 9년 전 서로 사랑했던 그때부터 이미 이루어져 있었던 건지도 몰라. 그랬는데 우리만, 너랑 나랑만 그걸 모르고 있었던 거야.” “그때부터 이루어졌던 거라고.” “응. 9년 동안 그걸 모르고 우리는 가슴속에 고백의 말들을 숨겨두고만 있었던 건데. 사실은 너랑 내가 처음 만나, 서로를 가슴속에 품기 시작했던 그때부터 이미 이루어졌던 고백이었던 거야.” “그러게. 진짜 그런 것 같다. 우리는 지금 긴 첫사랑을 하고 있으니까.” “응. 앞으로도 우리는 이 사랑만 할 거니까. 끝나지 않을 긴 첫사랑을.” 방금 내가 한 말이 준의 가슴에 어떤 울림으로 다가간 건지, 나를 바라보는 준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곧 준은 고개를 기울여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준의 얼굴이 나와의 거리를 막 좁혔을 때 나도 살며시 눈을 감았다. 준이 막 내 볼을 감싸는 감촉이 좋았다. 입술이 닿았다. 윗입술 아랫입술을 번갈아 머금는 준의 입술이 뜨거웠다. 입속에서 부드럽게 엮이다가 다시 깊게 머금는 촉감에 귓불에서부터 열기가 번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맞붙었던 입술 사이에 살짝 여유가 생겼을 때, 준이 참았던 숨을 내쉬며 말했다. “말도 안 되게 달아.” “나도.” 짧게 답을 흩날리고는, 이미 달뜨기 시작한 마음을 전하듯 내가 먼저 급하게 준의 입술을 찾았다. 잠시 뒤로 밀리던 준의 고개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네 입매가 가늘게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 난 입술의 방향을 바꿨다. 준의 귓불에서 목덜미로 가볍게 입을 맞추며 내려갔다. 내 허리를 어루만지던 손이 우뚝 움직임을 멈췄다. “방금 그거 뭔데.” “……뭐가?” 뒤늦게 찾아온 부끄러움에 숨소리까지 닿을 거리의 준의 눈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네가 나한테 한 거.” “……그걸, 왜 물어봐.” “진짜. 물어볼 필요도 없는 거 맞아?” “뭐가.” “자꾸 말을 이리저리 돌리네. 이하루, 나 좀 봐봐.” 위로 슬쩍 올려 뜬 눈이 어렵게 준을 찾았다.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해 오른쪽으로 툭 떨어지고 말았지만. “꼭 말로 해야지 알아.” “아니. 네가 하도 오늘 집에 들어오지 마라, 나가라, 그런 말만 하니까. 반 포기하고 있긴 했는데…….” 이제야 일말의 확신이라도 생긴 건지. 고개를 살짝 숙여 웃는 준의 얼굴에 설렘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이러면, 그럼 무슨 뜻인지 알아줄 거야? 더 정확하게.” 난 준의 셔츠 가장 위에 자리한 단추를 풀며 준을 쳐다봤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곧은 눈빛으로. 말이 없는 준을 바라보며 다음 단추도 하나 더 끌러 냈다. 연하게 미소가 떠오른 입매가 더 위로 올라갔다. “……아직, 잘 모르겠는데.” 다음 단추로 향하려던 손끝이 멈칫했다. “너 지금 일부러 그러지.” “아니. 매우 진정성 있게 말하고 있어. 중간에 멈춘 게 한두 번이어야 말이지.” 장난을 치려는 게 투명하게 보이고 있었지만, 오늘은 나도 조금은 준을 긴장시키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좋은 의미로. 난 준의 가슴을 뒤로 밀었다. 밀리지 않으려 힘을 주던 준도 이내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이 뒤로 넘어가 주었다. 카펫 위로 준의 머리가 닿자마자 난, 그 위에서 몸을 숙여 준에게 키스를 했다. 준의 셔츠 단추가 모두 풀어지고 그제야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던 스타베팅 떼고 준을 바라봤다. “준아.” “응.” 야릇한 감각에 취한 음성이 나른했다. “네가 해줘.” “응.” 피식 웃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위치가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준의 입술도 손길도 한없이 부드러웠다. 내 이름을 부르는 준의 음성이 그의 손길처럼 달콤해 자꾸만 취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순간, 네가 내 곁에 있어서 좋았다. 이다음 모든 순간들에도 네가 내 곁에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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