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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빈목도
작성일23-05-25 16:33 조회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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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가.

영원할 것 같은 것조차 변할 정도로 십 년이란 세월은 길다는 뜻이다.

일견하기에는 옳은 말인 것 같지만, 옳지 않은 말이기도 하다. 십 년은 강산도 변할 시간일지언정, 사람이 변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니까.

전근대적인 농경 사회란 본래 그런 법이다.

어제 같은 오늘이 오늘 같은 내일로 이어진다. 아버지의 아버지 대부터 했던 대로 밭을 갈고 씨를 뿌려 수확하는 일 년이 아들의 아들 대까지 내려가는 사회.

교통과 통신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세계란 그다지도 변화가 느린 법.

“부모님 걱정하시니까, 옆으로 새지 말고 일단 집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놀아야 한다! 나중에 선생님이 다 물어볼 거야!”

“네에!”

“좋아, 그러면 오늘 수업은 끝! 다들 집으로 가렴!”

“우아아아아!”

안코나는 홀로 그런 세태에 맞서듯 무시무시한 속도로 변했다.

십 년도 아니고 겨우 사 년여 만에 없었던 것이 생기고, 불필요한 것이 없어졌으니 오랜만에 찾아온 사람은 낯설다고 느낄 정도.

혁명의 밤 이후에 일어난 수많은 변화 중에서도 가장 선두라고 할 수 있는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가장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기초적인 교육만 제공하는 기관으로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다르다. 초등부터 시작해서 대학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교육 체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야 그런 거창한 사실 따위, 잘 알지도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녀석들에게 중요한 건 지루한 수업 시간이 끝나고 나가 놀 시간이 왔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에휴, 어린놈들.”

“너도 아직 어린놈이거든?”

“훗, 내가 여전히 너처럼 꼬꼬마로 보이는 건가? 눈에 좋은 음식을 좀 더 먹을 필요가 있겠는걸? 오랜 벗이여, 난 자네를 참 좋아하지만 우린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네.”

벡스터는 거만한 목소리로 으스대는 벤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만 내뱉었다.

이 자식이 왜 이러는지 이해 못 할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너무 심한 것 아닌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사상 최연소 마스터라도 된 줄 알겠다.

“야, 네가 직인 돼서 좋아 죽겠는 건 알겠거든? 근데 너 이제 제일 하급 직인 된 거잖아. 본질적인 차이는 개뿔이 본질적인 차이야!”

“허허, 예민하군. 사람은 본래 진실을 마주하면 사나워지는 법이니, 너그러운 내가 이해해주겠네. 하하! 난 이제 어른이고, 자네는 아이니까 말이지.”

벤은 벡스터의 날카로운 지적에도 허허 웃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는 벡스터는 어이가 가출할 지경이었다.

동갑내기 열 살짜리 주제에 무슨 나이 지긋한 마스터가 한참 어린 도제에게나 할 법한 목소리로 훈계 같지도 않은 훈계를 하려고 드니 기분 좋을 리 없다.

하다못해 정말 거대한 업적이라도 이뤘으면 아무리 눈꼴 셔도 가만히 있었으리라. 이런 자식도 친구라고 좋은 일은 축하해주고 싶었으니까.

잠깐 참아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달랑 D급 직인이 됐다고 이렇게 구는 건 친구로서 참을 수 없다.

“어른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네가 진짜 어른이었으면 그런 거로 자랑할 생각도 안 했을걸?”

“훗, 어른이라도 기쁜 일은 기쁜 법이지. 그리고 아직 네가 잘 모르나 본데, 나는 이제 대장장이로서 출발선에서 한 걸음 내디딘 거라고. 너는 출발선에 서지도 못 했고.”

벡스터가 뭐라고 해도 벤은 당당했다.

BCDA로 이어지는 직인 중에 가장 낮은 직위라고? 누구나 처음은 있고, 벤은 이제 열 살이다.

열 살에 정식으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직인이 됐으니, 충분히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도 대단한 일이었고.

아무리 스승이 안코나 제일의 도검장 발보라도, 벤이 그 좋아하는 집에도 잘 안 들어가고 대장간에 붙어 있었더라도.

열 살에 대장장이가 된 건 분명히 업적이라고 불러도 될 일이었다.

물론 진정한 친구라면 그런 사실을 기뻐하면서도 욕부터 하고 보는 법.

“내가 이 새끼 뭐 하나 했더니, 또 잘난 척이냐. 으휴, 꼴값 그만 떨고 집으로 가자.”

“아아니, 꼴값이라니! 이 자식들은 친구가 성공했으면 축하할 줄은 모르고!”

“그 축하하러 가자고 하는 거잖아, 아. 그리고 새끼야, 좀 겸손할 줄 알아봐라. 사부님처럼.”

갑자기 나타나서 뒤통수를 후려친 베네딕토의 입에서 사부님이 언급되자 벤도 입을 다물었다.

“야, 사부님 말하는 건 솔직히 반칙이지. 우리 사부님이야 인격자시고, 난 아니잖아.”

“지 인격자 아닌 줄은 알아서 다행이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인격자는 고사하고 그냥 한심한 동네 꼬마지.”

“야, 베르너!”

학년이 올라가면서 옆 반으로 갈라진 아이인 베르너까지 나타나서 독설을 퍼붓자 참지 못한 벤이 날카롭게 외쳤다.

하지만 베르너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받아칠 따름이었다.

“진짜 어른은 너처럼 제발 축하해달라고 으스대지 않아. 왜냐고? 바르게 살아왔다면 알아서 주변 사람들이 축하해줄 걸 알거든.”

엠마의 소개로 학교가 끝나고 사제 교육을 받은 지도 벌써 3년째지만, 베르너의 차가운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적어도 입만 벌리면 튀어나오는 독설만큼은 그대로였다.

벤은 그런 베르너에게 얼굴을 붉히며 쏘아붙였다.

“흥! 그러는 너도 고양이만 보면 정신 못 차리는 주제에!”

“뭐, 뭐?”

“발보 할아버지 대장간에서 오는 길에 봤거든? 난 우리 집 베르너가 사제 지망생이 아니라 드루이드 지망생인 줄 알았어. 아주 그냥, 인기 폭발이더만?”

수십 마리에 달하는 고양이 떼에게 둘러싸인 베르너를 보고 어찌나 놀랐던지.

벤은 녀석이 습격이라도 당하는 줄 알고 기겁해서 늘 차고 다니는 칼부터 뽑아서 돌진할 뻔했다.

당장에라도 뛰어 들어가 칼부림하려다가, 베르너 녀석이 실실 웃으면서 손에서 뭘 꺼내 주는 걸 보고 멈췄지만.

“너, 너! 그걸 어떻게 봤어!”

“아, 오는 길에 보였다니까. 좋겠다? 고양이한테 인기 많아서?”

하루 이틀 그런 게 아니었는지 고양이들도 난리였다.

베르너의 다리에 슥 몸을 비비고 지나가는 건 물론이고 어깨에 올라타서 야옹야옹 우는 녀석에 손 하며 얼굴을 찹찹 핥는 녀석까지.

보던 벤이 부러워질 정도로 그때 베르너는 밝게 웃고 있었다.

물론 숨기고 싶던 사실을 들킨 베르너는 부럽고 나발이고 달려들어서 벤의 입부터 막으려고 들었지만.

“헤헹! 그 정도로는 안 되거든? 대장장이의 힘을 무시하지 마라, 사제!”

“너, 이 자식!”

“시끄러워, 바보들아!”

큰 힘이 필요할 때는 트립 해머로 두들긴다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장장이로 살아가려면 손으로 망치질을 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벤이 사제 교육을 받으며 몸을 불린 베르너에게도 밀리지 않고 투덕거릴 때였다.

나무로 만든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앙칼진 목소리가 둘의 귓전을 때렸다.

“어휴, 너희는 진짜! 언제 철들래?”

“야! 철들다니! 난 이미 어른이거든?”

“어어른? 요즘 어른은 그렇게 서로 몸싸움하냐? 오늘 처음 알았네. 어른이면 사부님처럼 차분하고 자상해야지!”

아디라가 양손을 홀덤추천 얹고 철없는 사내아이들을 다그쳤다.

정작 그렇게 말하는 아디라도 딱히 몇 년 전이랑 비교했을 때, 그다지 어른스러워지진 않았지만.

“너무 그러지 마. 우리 나이 때는 그래도 밝고 힘찬 게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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